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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Dain's Insights

사회에 진출한 전문직 여성들은 그 만큼의 의무가 있다

예전에 한 친구가 고민이 많다며 내게 얘기를 했다. 검사였던 그 친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결혼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사실 딱히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집안의 장녀에 가장이던 그에게 집안 어른의 기대는 컸다. 결혼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결혼전문회사에 등록을 하고 주말이면 선을 보러 나가느라 그 친구를 평일 점심 시간 외에는 만나기 힘들었다. 주로 전문직 종사자들을 맞선에서 소개받는데 제일 먼저 받는 질문이 전업을 언제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마음먹은 바가 있어 검사가 된 것으로 아는데, 요즘은 왜 굳이 검사를 고집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변호사로 전업을 하는 것은 어떨까 고민하고 있다고.

또 다른 한 친구. 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 공인회계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세무사 시험에 합격을 하고서 얼마 후에 한 변호사와 결혼을 했다. 지금은 전업주부다. 세무적인 질문이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골치 아픈 책을 보지 않은지 오래 되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답변뿐.

이들 친구들에게 내가 해 준 말이 있다. 너희들은 나름대로 어떻게 되었든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또한 그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고서 어떤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다. 개인적인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뭔가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선택한 안일한 삶은 너희 후배와 너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너로 인해 너희가 졸업한 학교를 볼 것이고, 사회로 진출한 전문직 여자를 볼 것이고, 그 평가는 또 하나의 편견에 확신을 더해줄 것이다.

이 말을 하고서 그 친구들은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말은 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냐고, 조금은 편하게 살아도 된다고. 나 역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사는 것이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다. 이 생각의 끝은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가로 이어지고 이게 다가 아니라면 뭔가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닿는다. 지금 원고를 쓰고 있는 것도 그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지만.

아직까지 그러할까? 나는 많은 편견을 겪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문직으로 일을 시작했음에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의사결정권자들이라 여직원의 평가 이상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런 편견들 속에서 그냥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텨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도 편한 삶이 있는 것이다. 그냥 마지못해 포기하듯 결혼과 집안으로 미끄러져도 큰 비난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솟는 것이다. ‘그래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려질 수 있는 것인 것 말이다.

여성이라는 것 말고도. 세상에 최초 혹은 갖은 편견 속에서 무언가를 시도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세상에 자극을 주고 사람들의 생각이 움직이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오랜 세월을 이어 온 것이다. 나는 이런 가치를 믿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세수를 하고 옷을 정갈히 입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갖춰 바른 자세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선조들을 그려본다. 그런 생각들과 가치들이 강한 힘을 갖게 마련이다. 그것이 곧 정신이 것이고 그게 우리가 지금 꼭 손에 움켜 쥘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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