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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Dain's Insights

건강한 대한민국을 기대한다면 인도를 시민에게 돌려줘야

우연히 국민체육진흥공단의 K-SPO 광고를 보게 되었다. 국민건강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스포츠를 즐기자는 내용이었다. 몇 년 전에 한국 체육대학 관계자와 나눴던 국민건강증진 프로젝트에 관한 대화도 떠오르고 해서 반갑고 좋았다. 광고 내용에 관해서는 완전히 원론적인 지향이라 아무 전제 없이 동의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서 이걸 굳이 공익광고로 만들어야 했나 의문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접근성이 그리 떨어지던가? 스포츠, 건강을 위한 운동은 우리의 일상 속에 녹여진 자연스러운 하루 활동 중 하나여야 하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특별한 비용이나 수고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걷기를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운동이 되기 위해 꾸준히 개인적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뿐더러 생각하지도 못한 우리의 환경을 마주하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나중에 깨닫게 된다. 

과거 내가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 만보계로 확인한 적이 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했다가 밤 11시가 다 되어 귀가할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을 깨어 활동했다 생각했는데 만보계의 숫자는 500을 넘지 않았다. 집에서 엘리베이터, 주차장, 차량으로 목적지까지 이동, 다시 엘리베이터, 사무실, 중간에 가끔 화장실이나 회의실을 가는 것이 전부였다. 식사도 미팅을 겸한 자리가 아니면 자리에서 간단히 해결하거나 혹은 외부 식당에서 미팅을 겸하게 되니 그 역시 차량으로 이동해 크게 걸을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식적으로 걸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번에는 예전에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눈에 띈다. 그중 제일 놀랐던 일이, 세상에나!!! 인도의 폭이 너무도 좁은 거다. 한 사람씩 줄을 서서 걸어야 할 만큼, 어느 곳에서는 마주오는 사람을 피하기도 좁을 인도를 본다. 현재의 인도를 살펴보니 과거에는 분명 인도의 몫이었던 길이 차도로 바뀌어 몇 개 차선이 된 것이다. 

도시의 길이 온통 사람중심이 아니라 차량 중심이다. 길을 걷다가 의도치 않게 마주하게 되는 우리네 이웃을 만나는 기쁨, 사유를 겸한 산책, 익숙함에 지나쳤다가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일상, 배려가 포함된 안전 등 공생의 여유를 잊는다. 모두가 차량을 갖고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만을 오가다 보니 우연한 발견과 사람들의 온기를 잊었다.

사람의 삶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 계획이 완벽하지도 않은 것인데 그럼에도 모든 것들을 우리의 통제 하에 두려고 애쓰며 사는 우리네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듯하다. 너무 삶을 목적지향으로 살고 있지 않나 돌아본다. 길만 살펴도 상권의 형성 양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감성이 느껴지기 마련이라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담아비추는 또 다른 거울인 것인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도시, 서울의 길에 사람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사람이 머무는 곳은 스토리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우리의 길에서 스토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삶의 속도를 사람에게 찾아줘야 한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에게 적절한 속도를 찾아주고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 복지다. 삶의 질로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망각하고 목적의 수단으로써 '나'를 무시하는 삶을 경쟁력이라는 허울 아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던가?  

국민을 위한 행정은 선택이 아니다. 복지는 옵션이 아니다. 국민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시민에게 제대로 된 인도를 돌려주고 길의 흐름을 사람의 속도로 맞춰주는 일이 우선이어야 한다.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서교류를 포함한 정신건강, 나아가 인간의 온기가 가득 찬 감성이 풍성한 도시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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