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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Dain's Insights

의료서비스의 개선방향은 보편적 개념과 개별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내 주위에는 알고 지내는 의료인들이 많다. 이런저런 일들로 만나 그들의 생활과 요즘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너무 영업(?)을 잘 하지 못하는 병원원장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병원운영을 걱정하는 수준까지 이르러, 유럽의 의료체계처럼 운영이 된다면 원장님께서는 하고 싶은 진료만 보며 지낼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고 위로 겸해서 한 마디 했다가 토론 수준이 되었다.

결론은 원장님과 나의 생각은 같았지만, 비의료인이 생각하는 방법과 의료인이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구체성에서 차이가 있는 듯했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도록 하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리고 싶은 대상은 특화된 분야로 시장의 논리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라 함은 의료적 서비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차적으로 수반되는 포괄적 서비스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원론적인 부분은 분명히 의견이 같았으나 나는 사실 구체적인 방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수선하고 막막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몇몇 예를 들어 대화를 하다가 산부인과에 이르면, 공공분야로서 의료의 문제는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요즘 전반적으로 산부인과 개원도 적지만,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 자체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의료수가가 낮아 수입이 적은 것도 하나이지만, 빈번한 의료소송 때문이라고 한다. 의료인의 입장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 과목일 경우, 병원개원을 위해 투자되어야 할 비용도 과한데다가 의료수가도 낮고, 그나마 근근이 병원을 운영하다가 의료소송이라도 발생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개인병원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방어진료 혹은 비수술적 치료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전공이라는 자부심도 있는 의사들이지만, 얼굴에 선하나 긋는 것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는 자괴감은 전공을 바꾸는 주요인이 된다.

아울러 산부인과 수련의들의 경우, 미숙아가 출생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큐베이터 섭외하는 일이라고 한다. 꽤 고가의 장비이고 또 고가의 진료비를 청구하지만, 인큐베이터 시설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병원수지를 악화시키기 때문에 이 시설을 갖추고 있는 산부인과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 그 비용을 환자보호자가 대부분 부담해야 하는데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지원금마저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출산장려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는 국가가 커버하고 있는 영역은 실로 너무 미미하여 실망스러웠다. 신생아를 출산한 부부라 해야 아직은 경제적 기반을 잡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 신혼부부일 텐데 이들이 부담하기에는 2000~3000만원의 비용은 너무 큰 부담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공공분야의 의료서비스가 취약하다는 지적을 자주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오래 전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라며 들었던 얘기인데, 대한민국에는 의료원이라고 지칭하는 병원이 있다. 공익을 위해 설립된 병원이기 때문에 의료원의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면 적자가 나는 구조가 옳은 그림이다. 그런데 생산성 평가라는 기준으로 수익률을 따지고 있어 한탄스럽다고 걱정하는 의료원장님과의 일화를 들었다. 왜 국공립대학 부속병원들이 전부 6인실 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민간병원운영방식을 따라가는가, 왜 도심의 보건소에서 X-레이 장비를 갖추며 일반의원처럼 진료하려고 하는가? 뭔가 원칙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FTA협정에 의한 의료서비스의 자유화와 의료민영화를 화두로 내걸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그렇다고 현재 건강보험 자체에 문제가 있어 민간보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아전인수하는 당사자가 없길 바란다. 대한민국 건강보험은 독재시절 노동자들의 착취를 담보로 확보된 대가였음을 잊어서는 안되며 꼭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제도다. 혹자는 이런 문제제기를 호기로 삼아 의료자율화만 챙기려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지만, 실익과 공익의 무게를 따져 심각하게 원칙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의료인이라면 어느 회장님을 진료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려냈는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는가에 방점을 더 둘 수 있는 집단이다. 이들이 어떤 병원에서 근무하든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이것은 국민의 보건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임무다. 특히 수술을 해야 하는 과목일 경우, 그리고 부가적인 설비들이 투자되어야 하는 과목이라면 더구나 국민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외과계열 의료서비스에 관해서는 국가가 개입해 안정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모든 의료가 생명과 연관이 있지만, 수술을 동반하는 외과적 진료는 사람을 살리는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과목이다. 100% 안전한 수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확률상 보다 안전하게 분류되는 것일 뿐이다.

사람 목숨을 갖고 임상실험 하듯이 수술하고 책임에서 자유롭게 만들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만큼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위험이 높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고, 외과 전공의 없이 대한민국 의료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인지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떠안기에는 큰 부담이 되는 의료영역은 국가가 부담을 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의해서만 국가의 의료경쟁력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이외에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병의원들은 그들만의 특화된 서비스로 경쟁의 논리를 펼치는 것은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호텔수준의 안락한 병실일 수도 있고, 비서를 겸한 간호사의 영역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안녕을 위한 안정적인 기본 인프라는 갖추고 그 위에 특화된 더 무언가를 하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하는 의료서비스의 개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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