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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Dain's Insights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이화여대에서 취업한 졸업생을 대상으로 PEER 모임이 있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구석구석 이화인이 없는 곳은 없는 것 같은데 조직에서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문들 때문에 이대출신은 결속력이 적은 것으로 비치게 되어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이화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이화인은 잘해도, 못해도 ‘이대출신이니까’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한편에서는 이것을 집단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으로 폄하하는 무리도 있지만 이화의 독특한 환경을 거친 이화인의 특성이니 크게 걱정할 바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독특함이 이화인을 사회에서 견디게 한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정상인이 이상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하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반대의 성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합리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소개들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부터 10년차 이상 직장인도 함께 한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고민하고 얘기하는 내용은 역시나 나도 겪었던 것들이라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만 있었다. 섣부른 조언을 구구절절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은 그들이 속한 회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전체구조를 바라보고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시기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갓 대학입시를 치르고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사람에게 졸업후 취업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고 기회가 되면 내 후배들에게 혹은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첫 직장을 가져야 할 시기였던 1997년은 IMF의 영향으로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는 동창이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가지 고민과 방황으로 대학생활을 했던 내게 남은 조건은, 취업시장에서 결코 유리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저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열망만으로 ‘남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직업을 찾게 되었고, 글과 관련된 업종중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사회생활이 수월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업무 자체는 재미가 있었고 나는 그럭저럭 성공한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일이 손에 익고, 인정도 받고, 스카우트제의도 받으면서 앞으로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처럼 살다 보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의 내 모습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 무엇인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은 늘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던 것이어서, 나의 모든 과거와의 인연들을 끊고 대학원에 갔다. 학문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은 내게 너무 어려웠고, 경제부분 특히 금융에 관해서는 도통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무작정 금융분야 직장에 취업해서 일하며 공부하자로 작정하였고, 취업을 고민하고 있던 동기들의 부러움과 나름 인정도 좀 받으면서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금융권에 입문하게 되었다. 비교적 자산가들을 접하던 금융회사에서의 경험은 계층에 관한 이해와 안락한 생활을 제공해주었지만, 실무를 통한 공부라고 핑계삼아 도피했던 이 역시도 이미 처음 의도는 사라지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하루만 쌓이는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이 분야에서의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 역시 내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공허함은 내게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해주지 못했고 언제든지 훌훌 털고 세상을 떠나도 별 아쉬울 것도 없는 의미 없는 삶이었다. 남들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비치고 싶은가 혹은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을 선택하며 보내던 시간들은 나의 껍데기만 남겨놓았다. 내게 있어 삶의 동력은 ‘의미’였던 것 같다. 그 동력이 사라지고 없으니 닳아빠진 기계마냥 삐걱대는 소음을 만들면서 마지못해 굴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는 불안한 하루하루… 그렇지만 이런 깨달음 역시 내가 끊임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얻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쳐 보라. 나는 젊었고, 경험도 없었고 맹목적인 자신감으로 치장했을 뿐 정작 나는, 내가 선택하여 얻게 될 나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다. 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조언으로 둔갑시킨 남들의 시선속에 내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믿게 된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뭔가 잘못 산 것 같은데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주위를 돌아보니 지금의 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제는 내게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이 역시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에게 결코 늦은 시기라는 것은 없음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나에 대한 확신은 조금 더 노력하는 것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히 많은 세월을 살아낸 사람도 아니지만, 단지 몇 발자국 앞에서 걸어본 경험자의 말이 보다 현실적인 조언이 될 것임을 믿는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직장에서, 직업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자신의 꿈을 물질적 안락과 맞바꾸며 내동댕이치지 말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흔들리는 나침반의 자석처럼 불안한 움직임 속에서도 방향은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일을 하는 것도 포함한다. 유한한 우리의 삶을 어쩔 수 없이 채우게 되는 시간이지 않길 바란다. 일은 어디에서 일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느냐, 그것으로 내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느냐에 의한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아울러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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